축구, 2002년으로 되돌아간다면 (망상)
Story/적을까
2008/08/10 23:59
굉장히 뒤늦은 감상인데, 올림픽 축구를 시청하면서 새삼 떠오른건 이 나라의 축구 열기는 아직은 뜨끈하다는 거다. 절대적으로 대표팀 경기에 한해서지만. 뜨겁다고 하지 않고 뜨끈하다고 한 건 아무래도 2002년 이후에 반짝했던 그떄의 열기와는 비교할 수 없어서인데, 최근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대한 성원과 관심이 줄어드는 일은 매우 힘들어보인다.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독이 든 성배’가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질타가 쏟아지긴 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얘기다.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높은 반면, 이 전력을 뒷받침해줄 기반인 프로 스포츠로서의 축구리그는 어중간한 상태로 발전이 지체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 국가대표팀에 관심을 갖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프로 리그인 K리그에 관심이 없다. 이것은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을 표방하고 있는 국내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기는 하다. 다만 축구의 경우는 다른 종목에 비해 좋은 인프라가 갖춰져 있고, 프로 리그의 역사도 길며 야구에 이어 두번째로 괜찮은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2002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전국을 휩쓸었던 거리 응원 문화에 소위 ‘보수’라고도 불리고 ‘우파’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은 발전한 조국에 대한 끝없는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감격해마지 않았으며, 소위 ‘진보’라고도 불리고 ‘좌파’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은 87년 이후 다시 한번 폭발한 광장의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꼈고 붉은색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사회에 대해 새삼스러운 민주화의 감격을 토로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이러한 열기는 축구, 그리고 K리그에 대한 관심으로 일정 부분 이어질 것이라고 축구계는 기대했던 것이지만 이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2002년은 하나의 축제이자 이벤트였다. 사람들이 축구 자체에 대해 보인 관심은 4년마다 한번씩 (언론이 띄우는) 국민적 스포츠 영웅이 손쉽게 금메달을 따내는 과정 그 이상이 되지 않았다. 오프사이드, 포메이션, 페널티킥과 승부차기 같은 용어는 평영 자유영 배영이나 50m 100m 등의 전문적인 용어에 불과했다. 스포츠를 즐기는 데에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당시의 축구는 이벤트의 소재로서 다뤄졌을 뿐이며 사람들은 스포츠가 아닌 축제 자체를 즐겼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을 외치고 정해진 박자로 박수를 치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는게 그 시절이었고, 사람들이 한국 스포츠를 응원해 온 연장선상의 방식이었다.
스포츠가 아닌 축제를 즐겼던 그들에게 K리그는 단순하고 평범한, ‘재미없는’ 무엇이었다. 때문에 K리그의 흥행 실패를 국민들의 '배신'이나 무관심 탓으로 돌리는 것은 대표적인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가 끝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축제가 끝나자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것뿐이다. 같은 '대학민국' 선수인 김남일과 이을용이 각기 다른 소속ㅌ임에서 서로를 향해 싸우는 풍경도 일부 팬들에게는 어색하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뚜렷한 지역 연고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같은 나라라는 개념으로는 묶여도 낯선 연고지와 프로 클럽을 향한 충성도는 자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당시로 날아가서 정말로 K리그를 흥행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했을까?
이후부터는 완전한 망상이니 읽는 사람의 배경지식과 내공 여부에 따라서 얼마든지 마음껏 비웃어도 좋다.
다만 한일 공동개최였던 2002 월드컵을 계기로 동북아시아 통합 리그를 구성해봤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을 토대로 착실히 풀뿌리 클럽팀을 정착시킨, 리그 운영면에서는 성숙한 J리그와는 달리 K리그는 저변이 매우 좁다. 중국의 경우 가능성은 크지만 역사나 선수들의 실력 면에서 두 리그에 뒤처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클럽팀을 경영할 때 지향해야 할 점은 연고지역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립 가능한 재정도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팀의 평균관중수가 현저히 적고 국가대표팀의 인기가 다른 부문을 잠식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국내 스포츠 단체 중 가장 풍부한 자금과 매출을 내고 있는 법인 중 하나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 클럽팀으로 충성도가 옮겨가지 않느냐고 화내기보다, 갑자기 클럽에 대한 애정을 생겨나게 하려 애쓰기보다는 국가대항의 개념을 조금 더 이용해서 리그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방향 설정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일본의 선진적인 리그 운영 기법을 배우고 중국의 공한증 심리를 이용하면 괜찮은 대결 구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으로서도 - 비록 꾸준한 투자가 차근차근 진행되어왔지만 - 선수들의 수준 자체는 크게 높은 편이 아니기에 - 중국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면 - 손해되는 장사는 아닐지도 모른다)
리그 운영이 너무나 과감하다고 생각하면 동북아시아 한정 컵대회도 괜찮다. 동아시아축구연맹이라 해서 베트남, 몽골 등의 10개국 축구협회의 연맹이 있긴 한데, 여기가 개최하는 대회는 클럽끼리 펼치는게 아니라 국가대항전인 동아시아 축구대회. 공식A매치로 보기도 어려워서 우리는 보통 1.5군이 출전하는 별 실효성 없는 대회다. [...] 그것보단 국내 컵대회를 하나 양보하더라도 3국이 같이 참여하는 컵대회가 있으면 잘 팔리지 않을까.
이미 아시아가 너무 지역이 넓은데다 중동이 차지하는 입김이 너무 커서 많은 견제를 받는게 사실인데, 이렇게 리그를 지역 단위로 묶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동북아시아가 따로 독립해나가는 경우를 생각해 봄 직도 하다.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높은 반면, 이 전력을 뒷받침해줄 기반인 프로 스포츠로서의 축구리그는 어중간한 상태로 발전이 지체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 국가대표팀에 관심을 갖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프로 리그인 K리그에 관심이 없다. 이것은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을 표방하고 있는 국내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기는 하다. 다만 축구의 경우는 다른 종목에 비해 좋은 인프라가 갖춰져 있고, 프로 리그의 역사도 길며 야구에 이어 두번째로 괜찮은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2002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전국을 휩쓸었던 거리 응원 문화에 소위 ‘보수’라고도 불리고 ‘우파’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은 발전한 조국에 대한 끝없는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감격해마지 않았으며, 소위 ‘진보’라고도 불리고 ‘좌파’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은 87년 이후 다시 한번 폭발한 광장의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꼈고 붉은색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사회에 대해 새삼스러운 민주화의 감격을 토로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이러한 열기는 축구, 그리고 K리그에 대한 관심으로 일정 부분 이어질 것이라고 축구계는 기대했던 것이지만 이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2002년은 하나의 축제이자 이벤트였다. 사람들이 축구 자체에 대해 보인 관심은 4년마다 한번씩 (언론이 띄우는) 국민적 스포츠 영웅이 손쉽게 금메달을 따내는 과정 그 이상이 되지 않았다. 오프사이드, 포메이션, 페널티킥과 승부차기 같은 용어는 평영 자유영 배영이나 50m 100m 등의 전문적인 용어에 불과했다. 스포츠를 즐기는 데에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당시의 축구는 이벤트의 소재로서 다뤄졌을 뿐이며 사람들은 스포츠가 아닌 축제 자체를 즐겼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을 외치고 정해진 박자로 박수를 치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는게 그 시절이었고, 사람들이 한국 스포츠를 응원해 온 연장선상의 방식이었다.
스포츠가 아닌 축제를 즐겼던 그들에게 K리그는 단순하고 평범한, ‘재미없는’ 무엇이었다. 때문에 K리그의 흥행 실패를 국민들의 '배신'이나 무관심 탓으로 돌리는 것은 대표적인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가 끝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축제가 끝나자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것뿐이다. 같은 '대학민국' 선수인 김남일과 이을용이 각기 다른 소속ㅌ임에서 서로를 향해 싸우는 풍경도 일부 팬들에게는 어색하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뚜렷한 지역 연고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같은 나라라는 개념으로는 묶여도 낯선 연고지와 프로 클럽을 향한 충성도는 자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당시로 날아가서 정말로 K리그를 흥행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했을까?
이후부터는 완전한 망상이니 읽는 사람의 배경지식과 내공 여부에 따라서 얼마든지 마음껏 비웃어도 좋다.
다만 한일 공동개최였던 2002 월드컵을 계기로 동북아시아 통합 리그를 구성해봤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을 토대로 착실히 풀뿌리 클럽팀을 정착시킨, 리그 운영면에서는 성숙한 J리그와는 달리 K리그는 저변이 매우 좁다. 중국의 경우 가능성은 크지만 역사나 선수들의 실력 면에서 두 리그에 뒤처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클럽팀을 경영할 때 지향해야 할 점은 연고지역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립 가능한 재정도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팀의 평균관중수가 현저히 적고 국가대표팀의 인기가 다른 부문을 잠식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국내 스포츠 단체 중 가장 풍부한 자금과 매출을 내고 있는 법인 중 하나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 클럽팀으로 충성도가 옮겨가지 않느냐고 화내기보다, 갑자기 클럽에 대한 애정을 생겨나게 하려 애쓰기보다는 국가대항의 개념을 조금 더 이용해서 리그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방향 설정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일본의 선진적인 리그 운영 기법을 배우고 중국의 공한증 심리를 이용하면 괜찮은 대결 구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으로서도 - 비록 꾸준한 투자가 차근차근 진행되어왔지만 - 선수들의 수준 자체는 크게 높은 편이 아니기에 - 중국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면 - 손해되는 장사는 아닐지도 모른다)
리그 운영이 너무나 과감하다고 생각하면 동북아시아 한정 컵대회도 괜찮다. 동아시아축구연맹이라 해서 베트남, 몽골 등의 10개국 축구협회의 연맹이 있긴 한데, 여기가 개최하는 대회는 클럽끼리 펼치는게 아니라 국가대항전인 동아시아 축구대회. 공식A매치로 보기도 어려워서 우리는 보통 1.5군이 출전하는 별 실효성 없는 대회다. [...] 그것보단 국내 컵대회를 하나 양보하더라도 3국이 같이 참여하는 컵대회가 있으면 잘 팔리지 않을까.
이미 아시아가 너무 지역이 넓은데다 중동이 차지하는 입김이 너무 커서 많은 견제를 받는게 사실인데, 이렇게 리그를 지역 단위로 묶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동북아시아가 따로 독립해나가는 경우를 생각해 봄 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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