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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4 피 주스를 향한 여정 (2) - 서진휘

피 주스를 향한 여정

  "안 돼, 이런걸론 되지 않아, 부족해."
  냉장고 안엔 오렌지 주스와 탁한 피 주스가 거의 비어가는 페트병 뿐이다. 갈증을 달래주기 위해선 신선한 피 주스가 필요하다.
  하는 수 없이 집을 나섰다.
 
  지난 번에 마셨던 그 피 주스는 없는건가, 하고 열심히 찾아봤지만 근처 슈퍼에 있을 리가 없다. 편리한 이 시대에 지킬 박사의 하인처럼 쫓겨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도니 그저 아쉬운 사람이 발품만 팔면 된다.
  그래도 두세 가게만에 나와주질 않는다.

  '피가 모자라...피가 모자라..'
  라고 말하진 않지만 누가 그런걸 봤다고 하면 90년대의 모 가수가 악마숭배라며 테이프를 거꾸로 틀어댔던 사람들을 본받은게다. 그런 생각까지 해주는 쪽이 악마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생각이지만, 요컨대 뭐든지 거꾸로인 세상이다. 거기에 나는 갈증을 풀면 되고.

  편의점에서 작은 유리병에 든 피 주스를 발견했다. 안돼, 이런걸론 택도 없지. 대량생산에 6시그마의 시대에 불순물이야 문제 없겠지만 질도 양도 다 중요한게 아닌가.

  많이 걸어서 대형 슈퍼마켓까지 가자 원하던 제품은 아니지만 다른 회사의 피 주스를 살 수 있었다. 이걸로 일용할 양식은 당분간 - 이틀간 - 확보, 감사합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유리잔에 가득 따르고 원샷, 감사합니다. 이제야 맑은 정신으로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해본다고 해서,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목덜미에 직접 이를 꽂아넣는 것보다 이게 훨씬 맛있으리라는 건 분명하다. 뒤틀린 이성으로 훌륭히 구축된 이 세계에 감사를 표하자.
2008/09/04 11:59 2008/09/04 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