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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8 원작을 뒤집어 생각해본 그림동화 (8) - 서진휘
원작을 뒤집어 생각해본 그림동화 - 6점
혼다 토오루 지음/창우BOOKS
  '그림 동화는 잔혹하다'라는 말이 바로 연상될 만큼 그림 동화의 이미지가 강해져 버린 오늘날이지만, 여러분!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그림 동화는 원래부터가 '동화'입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을 막론하고 사랑받는 존재물입니다.
  결국, 그림 동화는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랑 이야기의 원류인 것입니다.
- 혼다 토오루, 「실은 모에한 그림동화」, 2006
머릿글에서

  지인인 S모님의 협찬을 받아 읽게 된 책. 눈길을 끄는 저자 이름에다, '튀고 별나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띠지까지. 국내에는 '원작을 뒤집어 생각해본 그림동화'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세 가지 '혼란 방법'- 즉 문헌학적 텍스트 비판과 정신분석학, 유물론을 통해 동화를 하나의 텍스트로 이해했던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이링 페쳐)로부터, 동화를 재구축하는 작업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재구성된 많은 숫자의 동화만큼, 다양한 시점이 있다. 전승을 통해 만들어져 내려온 동화가 텍스트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제 재구성된 동화들은 어떤 관점에서 왜 불러내어졌는가를 따져야 할 시점이다.
  그러므로 「원작을 뒤집어 생각해본 그림동화」의 '뒤집었다'는 원제가 「실은 모에한 그림동화」라는 것은 극히 명료한 답을 나타내주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뒤집었다기 보다도, 그림동화의 이야기들을 빌려 쓴 모에동화다. 거기다가, 비평식의 글을 덧붙이고 싶어도 저자가 각 작품들마다 스스로의 해설을 붙여놨다. 이건 반칙이다(웃음).
  때문에 이것저것 적어보려던 기백도 모든 것을 까발린 저자의 해설 앞에 움츠러들 수 밖에 없는데... 별 수 없다, 다른 방식으로 써야지.

  이러한 무자각하고 천진난만한 '선악의 카테고리'는 동화나 만화의 아동용 이야기 장치에 의해서, 어린 아이들의 가슴 속에 새겨져 버린다.
  물론,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교육하는 행위 자체는 절대적으로 빠뜨려선 안 된다. (...)
  그런데, 많은 동화나 아동용 이야기에서는, '선'과 '악'을 각각 예를 들어 '왕자님'과 '늑대'라는 캐릭터에 투영시켜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실은, 아이들을 위해서 동화를 만드는 어른 자신이 "자신은 선인이고, 다른 누군가는 악인이다."라는 거대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 이것은 '억압'과 '투영'이라는 심리 규제에 의해서 생겨나는 오류이다. (...) 그림 동화를 재해석하면서 깨달은 것은, 이러한 "투영에 의한 악이 외부에 있다는 문제와 인간의 계층화이다."
- 혼다 토오루, 앞의 책, 후기에서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할 것까지도 없이, 굳이 이 책에서 재구성의 메세지를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위의 작가 후기 부분으로 대체로 충분하다. 저자는 동화에 의해 부여된 고정적인 선악의 투영에 혼란을 주고 싶었으며, 선인과 악인의 이분적인 잣대와 계급화를 학습시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다인 것 같다. 이 책은 '모에'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에 해설까지 넣는 반칙을 구사하고 있기에 감추어지지만, 작품만을 읽었을 때 이건 위트가 보일 뿐인 모에 스토리다. 해설에 서술하고 있는 내용 중에 자본주의나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 등이 들어가 있는 척 하지만 그걸 해설 없이 읽어내길 바란다면 저자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냉정히 말하면 작품에서 읽어내기 어렵기에 굳이 해설로 첨언을 했다고 할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모에 스토리면 어떤가. 기대하지 않았다면 여러 대목에서 피식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는 있다. 다만 해설이 없다면 재구성이 아니라 패러디에 불과하지 않을까라고 평가해야 할 정도라, 이 책을 다룬 몇 포스트들에서 '오타쿠 옹호용'이란 딱지가 붙은 것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나 스스로도 '오타쿠'라는 딱지를 아무렇게나 붙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표현은 하지 않기로 하겠다. 이 책은 그림동화의 몇 스토리들에 '모에'스러운 각색을 시도한 작품집이다. 그런 다음의 결론이 '여동생은 모에하지 않은가!' '옛 얘기에도 츤데레(저자식 표현으로는 츤데레)가 있지 않은가!' '성역할이 바뀌어도 역시 모에란건 좋은게 아닌가!'라는건데. 이게 얼마만큼의 결론이 되겠는가? 뭐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그 정도일 뿐이다.
 
  그래도 '동화 재구성 읽기'라는 맥락 속에 이 책을 집어넣을 때, 저자가 '모에'에만 너무 주목한 나머지 스스로 사랑 이야기를 쓴다고 해놓고 그 본질에 대해 별 탐구나 언급 없이 모에를 적용한 부작용이,
  "예쁘면 다 통한다."라고 하는 진리는 역시 세계 각국, 시대를 막론하고 다 통한다 생각되어 집니다.
- 앞의 책, p. 42
  결국 여자를 사랑의 대상으로써 우러러 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 먹이로써 취급하는 타입의 남자도 존재합니다. (...) 유감스럽게도, 많은 여자들은 이러한 남자를 좋아합니다.
- 앞의 책, p. 60
  이처럼, 내 나름대로 그럴 듯한 억지 이론들을 늘여 좋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여동생은 강하다, 여동생은 예쁘다!!" 동생을 사랑하는게 뭐가 나빠!!
- 앞의 책, p. 236
  처럼 나타나버린다. 굳이 여기다 페미니즘을 들이대서 글을 길게 만들고 싶진 않지만. 작가가 동화를 재구성해봤다는 계기로 '선악의 투영'에 대한 거부를 나타내고 있는 걸 들어보면, 누군가 [왜 당신은 동화에 모에를 투영했는가? 모에가 아닌 사랑 이야기는 없지 않나?] 라고 물었을 때 작가는 불행히도 "내가 좋아서 그랬다, 모에, 좋지 않은가? 여동생은 역시 모에하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은 모에한 그림동화」라는 제목을 「원작을 뒤집어 생각해본 그림동화」라 낸 건 솔직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모에'라는 말을 번역하기 곤란할지 모르지만, 모에가 모에지 뭐겠는가.

덧 | 문장의 번역 완성도는, 안 좋습니다. [...] 인용문에도 그대로 보이기에 한마디 해둡니다.
2008/07/28 01:59 2008/07/28 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