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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도시

2008/04/09 03:16
  2001년쯤인가, '서울에 꼭 살아야하는 이유가 있어요?'라는 질문을 처음 들었다.
  바꾸어 생각해보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째서 넓지도 않은 나라의 인구의 1/4이 한 도시에 모여 아귀다툼하듯 살아야만 하는지. 

  물론, 보통은 '반드시'라는 질문에 긍정이라는 대답이 오기는 힘들다. 하지만 (당위성을 띤다기보다는 통계적으로) 대부분의 한국인은 능력만 된다면 서울에 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이유는 서울의 주거 환경이 너무나 좋아서가 아니다. 인간다운 권리를 누리고 싶어서, 최소한 서울에서 살고 있으면 서울이 아닌 [지방] 주민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서울과 지방 사이에는, 나처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미처 짐작도 해보지 못했을만큼의 벽이 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양분을 반쯤 차지하고 자라난 배꼽과 같다. 흔히들 말하는 문화 시설은 말할 것도 없이- 삶을 윤택하게 해 줄 모든 요소들이 서울 안에만 뻗어 있다.

  지난해 한겨레 기사였던가, 출퇴근시간에 가장 많이 사람을 쏟아내는 지하철 역은 강남역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럴만한게 강남에는 굉장히 많은 회사들이 입주해 있고, 많은 회사원들이 출근하기 위해 같은 시간대에 수도권의 각지에서 그 동네로 몰려드니까. 그런데 여기서 잠깐, 기업들의 본사나 사무실은 왜 강남에 그리 많은걸까. 회사가 강남에 위치해서 생산성에 기여하는 부분은 대체 매출의 몇 퍼센트나 될까. 사원들이 주거지로부터 긴 시간을 오가며, 힘겨운 강남 출퇴근을 하는 만큼의 삶의 행복도 감소와 생산성 감소는 얼마나 될까. (동종산업군의 회사가 같은 동네에 모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논리는 알고 있지만, 그걸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 아니면 적어도 '강남'에 대해서는.)
  불행히도 결과주의적이지만 답은 '거기가 중심이니까'뿐인 듯하다. 이 논리에 종속되는 한, 중심부에 있는 사람은 떨어져나가지 않기 위해, 주변부에 있는 사람은 중심으로 진입하기 위해 생존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 이 공간을 현실의 세계에 확장한 것이 서울 공화국이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 출발선이 다른 사람,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서울 바깥에 있다. 서울이 아닌 것은, 아무리 극복하려 해도 일상의 불편함을 가져온다. 그 삶의 작은 요소요소들이 현실의 권력인 셈이다. '왜 꼭 서울에 살아야 하는데?' - '거기에 살아야 인간 대접을 받거든'. 다시 말해 승자와 패자 간의 현실 공간이다.

  지난 주 강동구를 지나가다가 국회의원 후보자의 현수막들을 보았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재건축 꼭 이뤄내겠습니다'가 현수막의 구호였다. 무려 재건축이 공약이다. 이 말의 뒷면에는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숨겨져 있다.
  점점 빽빽이 들어서고 있는 고층의 다세대 아파트 단지들은 한국만의 독특한 주거문화다.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는(유럽인이다) 자신의 친구들에게 한국의 아파트촌이 빈민들을 위한 주거공간이 아님을 이해시키는데 꽤 애를 먹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이제 일반 주택/맨션보다는 분명히 고급의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서울이라는, 혹은 강남이라는 매우 한정된 면적의 땅에 누구라도 거주하기 위해 그렇게 아파트는 고층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서울 공화국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강남 땅의 수요가 끝이 있을리 없다. 집을 아무리 많이 짓는다고 해도 가격은 항상 올라갈 수 밖에. 한정된 권리로부터 더 많은 재산을 약속받는다는 점에서 재건축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서울을 보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겠지만, 누군가 욕망의 서울을 보여달라고 하면 난 주저 없이 잠실을 보여주겠다. 이 동네는 강남과 마찬가지로 80년대에 개발되었고, 강남권으로 묶이는 서초, 강남, 송파의 한 일원(송파구)이기도 하면서 강남구에 항상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 88년 올림픽이 열렸다는게 주된 자랑으로 올림픽 개최를 통해 한 단계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이데올로기와 잘 어울리며, 강남권이 아닌 다른 서울 지역에 대한 우월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은 과거 잠실 주공아파트 대단지가 여러 단지로 나뉘어 재건축되었고, 또 재건축이 진행 중이다. 잠실 롯데 백화점은 소비의 상징이고, 롯데월드는 이 동네에 적절히 마련된 판타지의 세계다. 제 2 롯데월드를 지으려하는 롯데 신격호 회장의 야망이 공사장으로 아직 남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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