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적을까'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08/09/25 연금 고갈에 대한 간단하고 기본적인 이해 (2) - 서진휘
  2. 2008/09/11 판치라 : 남성적 욕망에 올라타기 (7) - 서진휘
  3. 2008/09/04 알라딘 TTB2 추천도서에 짧은 코멘트 - 서진휘
  4. 2008/08/10 축구, 2002년으로 되돌아간다면 (망상) - 서진휘
  5. 2008/07/29 마음대로 글쓰기 (2) - 서진휘
  6. 2008/07/23 괴쪽지라고 생각했더니 반전 (10) - 서진휘
  7. 2008/07/22 농담 같은 스토리 (2) - 서진휘
  8. 2008/07/21 플래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4) - 서진휘
  9. 2008/07/10 소위 정체성 (2) - 서진휘
  10. 2008/05/01 시사가 저를 좀먹어갑니다 (6) - 서진휘
  11. 2008/04/10 제 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 명단 (2) - 서진휘
  12. 2008/04/09 서울이라는 도시 (2) - 서진휘
  13. 2008/04/06 지하철 성행위 동영상에 대한 반응 (2) - 서진휘
  14. 2008/02/05 여성 운동선수의 인권에 대해 (2) - 서진휘
  흔히 연금 상태가 안 좋다든가 고갈되어 간다는 얘기가 나오면 누구든 '어떻게 운영을 했길래 그 지경'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언론에서 이를 효과적인 대정부 공세의 빌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정권이 어느쪽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공무원 연금이 최근에 개혁되었다고 하는데 보험료는 인상되고 지급액은 줄어든다고 한다. 이는 시간문제일 뿐 에상되던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러나 사실, 모든 연금은 고갈을 향해 달려가게 되어있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딜레마라고 할까. 연금 제도를 수십년 전부터 운영해봤던 선진국들도 차례차례 연금이 고갈되어갔고 옆나라 일본도 착실히 연금이 고갈되어가고 있다.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나라도 물론 하나하나 연금이 고갈되어 갈 예정이다. 그냥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뭐 연금 고갈에 대한 설명 방식이라고 보면 되겠다.

  1. 우선 연금은 공적 부조의 한 형태이다. 다시 말해, 연금 가입자가 은퇴 이후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지원을 목표로 한다.
  때문에 연금지급액은 가입자의 납입액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있어서 (여기서 말하는 인플레이션은 연금을 생각하고 있는만큼 수십년 단위로 보도록 하자.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매우 작거나 마이너스로 작동할 수도 있지만 장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상승한다고 할 수 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주1) 바꾸어 말하면, 연금 가입자가 납부한 연금액은 물가가 상승함에 따라 계속 가치 절하된다.
  인플레이션에 관한 고전적인 유머가 있다. 1억이면 집을 사던 시대에, 평생 죽어라 일만 열심히 하며 돈이 모이는대로 기쁨에 부들부들 떨면서 금고에 돈을 넣던 사람이 있었다. 대충 50년 뒤 드디어 원하던 1억원이 다 모였고 이제는 다시 기쁨에 눈물콧물 흘리면서 새 집에 들어갈 새 TV를 마련하자고 결심한다. 기분 좋게 구매하려는 순간 점원이 말한다. "5천만원입니다, 손님" ( - 극단적인 에라는건 눈감아주자...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으로 인플레이션율이 0.001%만 발생했다 치더라도 국가 전체적으론 손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자)
  국가는 연금 지급 대상자가 이 불쌍한 사람과 같은 처지에 빠지지 않도록, 최소한 연금지급액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손실 보전을 할 필요가 있다. 연금은 기본적으로 들어온 것에 비해 많이 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2. 그리고 연금 가입자의 인구 구조를 생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적 부조를 제도적으로 정착화시키는 (연금 강제 가입을 실현할 정도의) 단게의 국가라 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산업화가 완전히 완료되고, 소산소사의 도시형 인구 구조로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 피라미드가 역전되는 지점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태어나기는 조금 태어나고 평균 수명은 연장돼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연금은 한 세대만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문제가 있다. 간단히 생각해 25~65세 사이의 가입자가 65세 이후의 연금지급대상자들을 떠받치는 구조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행하는 동안 출산률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으며, 평균 수명은 연장되고,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는 늘어난다. 인구 피라미드의 아랫 부분은 점점 줄어들고, 윗부분은 점점 팽창한다. 젊은 세대의 인구는 줄어드는데 떠받쳐야 할 인구는 점점 늘어나므로, 그에 따른 압력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한국은 압축근대를 자랑하는만큼 저출산률에 있어서도 세계 제일이며 노령화 속도에 있어서도 세계 제일이다. 가입자가 받게 되는 압력은 엄청나게 클 수 밖에 없다.
  연금은 지급대상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계속 지급하는 것이 국가의 약속이다. 굳이 언급하는게 웃기는 일이지만, 사실만큼 사셨으니 어서 빨리 돌아가시라고 할게 아닌 다음에야, 납입료가 점점 인상되고 지급액이 점점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의 수순이다.

  3. '그렇다고 해도 좀 더 잘 운영하면' 모든 것을 보전하고 수익을 낼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금에는 한게가 있다. 사적 보험이 아니라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 부조의 형태이기 때문에, 연금의 운용에는 전통적으로 (미국에서도) 신중한 운용이 강조되어 왔다. 다시 말해 연금의 운용은 상당히 안정지향적이며, 무리하게 수익성을 추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연금 운용에서 일정 정도의 수익성을 추구하는 방향이 집행되었던건 케네디 정부에 이르러서야 시도되었던 일이다.

  19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출은 끊임없이 증가해왔다. 최소한의 작은 정부에서 점차 개인의 영역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고갈되어버릴 연금 따위 싹 없애버리면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젠 그럴 수도 없다. 국가의 공적 부조를 통해, 개인의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붏확실성(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있지만 가지고 가야만 하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연금 개혁이라는 것은 그래도 망하지는 않도록 연금을 조정해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연금 고갈에 대한 간단한 아이디어이기 떄문에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가뿐하게 쓰지 않기로 하겠다. : >

주1 )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 지칭하므로 어폐는 있는 문장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8/09/25 11:41 2008/09/25 11:41
  일상적 판치라
  새삼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데'라거나 (에전에도 안 그랬던 것 같지도 않다) '어머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어조라기보다는, 담담히 일상적 판치라라는 현상을 기술해보고 싶다. 그렇다, 요즘이야말로 일상적 판치라의 시대가 아닐까? 요즘은 도처에서 판치라를 볼 수 있다. 표지에 낚여 펼쳐 든 만화책에서도, 정체불명의 스토리를 확인하려 보기 시작한 애니에서도, 개발 중이라고 프로모션을 뿌리는 온라인 게임 스크린샷에서도, 어디에든 판치라가 자연스럽다는 듯이 존재할 것이다. 특정한 미디어 한정이긴 하지만. (설마 하여 덧붙이건대 캐릭터가 아닌 '현실'의 인물이 속옷을 드러낸다고 해서 판치라라고 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도 인터넷 공간으로 확장하면 미디어 한정이라는 것도 문제가 안 된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본 일러스트에 판치라 소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다든지. 그러고보면 이건 예전에는 흔하게 보기는 힘들었던 당황스러운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남성적 욕망
  어떤 면이 당황스러운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보자. 판치라의 대상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다. 코스프레라도 했거나 어지간히 하드코어한 장르가 아닌 다음에야 남성의 판치라는 생각하기 힘들다. (혹시라도 '남성의 판치라'를 다룬 작품이 있다면 부디 소개해주길 바란다. 레어하니까 꼭 봐야한다. [..] )
  다시 말해 판치라를 욕망하는 대상은 남성이다. 여기서 남성은 생물학적 남성이라기보다는 특정한 남성적 시선을 의미한다. '보일듯 말듯'의 한계점애 가까운 지점 정도가 판치라라고 생각한다.
 
  판치라는 '나쁜가'? 잘 모르겠다. 다만 판치라가 남성적 욕망의 현상이라는게 주지의 사실이고,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두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판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품'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도덕률을 강제할 권리는 없다. 다만 여성 캐릭터 대상의 이 장르를 불편해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동승하기
  판치라가 페티시즘의 하위 개념이든 아니든 어떻든간에, 이 개념은 기본적으로 은밀한 '엿보기' 심리를 전제로 깔고 있다. 판치라는 우연히 그려진 일러스트 하나, 우연히 만들어진 캐릭터 하나가 아니다. 남성적 욕망의 시선이 겹쳐지고 겹쳐져서 특정한 상품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진 하나의 '장르'다. 막말로 하면 일단 주목받고 웬만큼 나가니까 일단 벗겨본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즉슨 판치라가 결합된 어떤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러한 욕망의 시선에 나 자신 하나를 던져 욕망의 일부로 만든다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같은 배에 올라 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은 판치라가 나오는 순간에 이 시선에 자신을 포함시켜도 되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원작과는 아무 관계 없이, 어떤 캐릭터가 다른 이들에 의해 어딘가의 공간에서 판치라화 되는 것은 삽시간의 일이고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요즘은 이런 단계에서 모든 부산물들을 함께 즐길 것인가/말 것인가에 대해 조금은 곤혹스러워지는 것 같다. '남자니까 어쩔 수 없어'라는 논리를 자꾸 보게 되면 더욱 그렇다.

(여전히 결론은 없는 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8/09/11 12:16 2008/09/11 12:16
  별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거나 아니면 멋있게 보이려고[??] ... 같은 이유에서가 아니라,
  단순히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알라딘 TTB2를 신청하고 배너를 달아보았습니다. 그렇잖아요, 누가 굳이 마이너인 이 곳까지 와서 굳이 책 광고 배너를 클릭하겠어요. 전에 구글 애드센스를 달았을 때야 상품 종류가 다양하니까 클릭해본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어떤 책들이 올라오는가가 궁금했기 때문에, 랜덤으로 설정하고 한달 반 정도 두어보았습니다.
  약간 패턴이 있더군요.
  일단 유아용 도서와 고전문학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나올거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인문사회과학 도서가 나오는 일은 제가 관찰한 때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나는 책 제목으론 OOO선생님이 들려주는 OOO이야기 같은 시리즈나 제목에 똥이 들어가는 책이나 (기타 등등)
  이제 대충 뭐가 나온다는 파악은 됐으니 슬슬 카테고리를 지정하든지 책을 지정하든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그래도 돈은 안 벌릴 것 같지만 상관 없으니까요 [...생각해보니 알라딘엔 상관있으려나]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8/09/04 11:17 2008/09/04 11:17
  굉장히 뒤늦은 감상인데, 올림픽 축구를 시청하면서 새삼 떠오른건 이 나라의 축구 열기는 아직은 뜨끈하다는 거다. 절대적으로 대표팀 경기에 한해서지만. 뜨겁다고 하지 않고 뜨끈하다고 한 건 아무래도 2002년 이후에 반짝했던 그떄의 열기와는 비교할 수 없어서인데, 최근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대한 성원과 관심이 줄어드는 일은 매우 힘들어보인다.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독이 든 성배’가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질타가 쏟아지긴 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얘기다.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높은 반면, 이 전력을 뒷받침해줄 기반인 프로 스포츠로서의 축구리그는 어중간한 상태로 발전이 지체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 국가대표팀에 관심을 갖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프로 리그인 K리그에 관심이 없다. 이것은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을 표방하고 있는 국내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기는 하다. 다만 축구의 경우는 다른 종목에 비해 좋은 인프라가 갖춰져 있고, 프로 리그의 역사도 길며 야구에 이어 두번째로 괜찮은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2002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전국을 휩쓸었던 거리 응원 문화에 소위 ‘보수’라고도 불리고 ‘우파’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은 발전한 조국에 대한 끝없는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감격해마지 않았으며, 소위 ‘진보’라고도 불리고 ‘좌파’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은 87년 이후 다시 한번 폭발한 광장의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꼈고 붉은색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사회에 대해 새삼스러운 민주화의 감격을 토로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이러한 열기는 축구, 그리고 K리그에 대한 관심으로 일정 부분 이어질 것이라고 축구계는 기대했던 것이지만 이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2002년은 하나의 축제이자 이벤트였다. 사람들이 축구 자체에 대해 보인 관심은 4년마다 한번씩 (언론이 띄우는) 국민적 스포츠 영웅이 손쉽게 금메달을 따내는 과정 그 이상이 되지 않았다. 오프사이드, 포메이션, 페널티킥과 승부차기 같은 용어는 평영 자유영 배영이나 50m 100m 등의 전문적인 용어에 불과했다. 스포츠를 즐기는 데에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당시의 축구는 이벤트의 소재로서 다뤄졌을 뿐이며 사람들은 스포츠가 아닌 축제 자체를 즐겼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을 외치고 정해진 박자로 박수를 치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는게 그 시절이었고, 사람들이 한국 스포츠를 응원해 온 연장선상의 방식이었다.
  스포츠가 아닌 축제를 즐겼던 그들에게 K리그는 단순하고 평범한, ‘재미없는’ 무엇이었다. 때문에 K리그의 흥행 실패를 국민들의 '배신'이나 무관심 탓으로 돌리는 것은 대표적인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가 끝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축제가 끝나자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것뿐이다. 같은 '대학민국' 선수인 김남일과 이을용이 각기 다른 소속ㅌ임에서 서로를 향해 싸우는 풍경도 일부 팬들에게는 어색하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뚜렷한 지역 연고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같은 나라라는 개념으로는 묶여도 낯선 연고지와 프로 클럽을 향한 충성도는 자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당시로 날아가서 정말로 K리그를 흥행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했을까?

  이후부터는 완전한 망상이니 읽는 사람의 배경지식과 내공 여부에 따라서 얼마든지 마음껏 비웃어도 좋다.

  다만 한일 공동개최였던 2002 월드컵을 계기로 동북아시아 통합 리그를 구성해봤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을 토대로 착실히 풀뿌리 클럽팀을 정착시킨, 리그 운영면에서는 성숙한 J리그와는 달리 K리그는 저변이 매우 좁다. 중국의 경우 가능성은 크지만 역사나 선수들의 실력 면에서 두 리그에 뒤처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클럽팀을 경영할 때 지향해야 할 점은 연고지역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립 가능한 재정도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팀의 평균관중수가 현저히 적고 국가대표팀의 인기가 다른 부문을 잠식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국내 스포츠 단체 중 가장 풍부한 자금과 매출을 내고 있는 법인 중 하나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 클럽팀으로 충성도가 옮겨가지 않느냐고 화내기보다, 갑자기 클럽에 대한 애정을 생겨나게 하려 애쓰기보다는 국가대항의 개념을 조금 더 이용해서 리그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방향 설정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일본의 선진적인 리그 운영 기법을 배우고 중국의 공한증 심리를 이용하면 괜찮은 대결 구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으로서도 - 비록 꾸준한 투자가 차근차근 진행되어왔지만 - 선수들의 수준 자체는 크게 높은 편이 아니기에 - 중국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면 - 손해되는 장사는 아닐지도 모른다)
  리그 운영이 너무나 과감하다고 생각하면 동북아시아 한정 컵대회도 괜찮다. 동아시아축구연맹이라 해서 베트남, 몽골 등의 10개국 축구협회의 연맹이 있긴 한데, 여기가 개최하는 대회는 클럽끼리 펼치는게 아니라 국가대항전인 동아시아 축구대회. 공식A매치로 보기도 어려워서 우리는 보통 1.5군이 출전하는 별 실효성 없는 대회다. [...] 그것보단 국내 컵대회를 하나 양보하더라도 3국이 같이 참여하는 컵대회가 있으면 잘 팔리지 않을까.
  이미 아시아가 너무 지역이 넓은데다 중동이 차지하는 입김이 너무 커서 많은 견제를 받는게 사실인데, 이렇게 리그를 지역 단위로 묶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동북아시아가 따로 독립해나가는 경우를 생각해 봄 직도 하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8/08/10 23:59 2008/08/10 23:59

마음대로 글쓰기

  블로그를 열며 생각한 최소한의 목표는 '아무튼 제한을 두지 말고 자유롭게 글을 써보자'였던 것 같다. 아니, 분명 그랬을거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전히 잘 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달에 중요한 하나의 벽은 넘은 듯하다.
  마음대로 글쓰기라는건 당연히 모든걸 마음대로 술술 써내려갈 수 있다는 그런 경지...를 말하는건 아니고, 그저 무겁든 가볍든 주제 불문하고 마음 내키는대로 쓸 수 있게 하는 것.

  확실히 블로그를 처음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 주변에서 자극받은 것도 있었지만 - 흠결이 없고 보기에 좋을만한 글을 써야겠다고 너무 굳게 마음먹어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은, 포스트는 (굳이 의식해야겠다면) 남에게 흉보이지 않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흉잡혀도 괜찮다. 남이 나의 글을 평가하는 부분보다는, 나 스스로가 포스팅을 착실히 해나가는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쌓아올리고만 있는 것보다 아무렇게나 뱉어내보는 편이 낫다. (인간 세계의 상식을 어긋나는 포스팅이 아니라면, 이겠지만 그 얘기를 하는건 아니니까.) 쓰지 못하면 무력하고, 잊게 되니까. 가볍다고 경박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블로그는 일단은 자기 만족으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팅은 그냥 지르는 거야]라는 말을 해준 친구에게 감사한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8/07/29 02:34 2008/07/29 02:34

  실제로 쓰기도 하고 서비스 시험용이기도 하고 어쨌든 전 몇개의 오픈아이디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안철수연구소에서 서비스하는 아이디테일도 물론 사용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디테일 쪽에서 제 계정으로 메일을 보내서 한번 열어봤습니다. '회원님께서 일주일 동안 읽지 않으신 쪽지가-'
  그렇습니다. 아이디테일에선 오픈아이디 유저간의 친구 등록과 쪽지 시스템을 지원하던 것이었죠. 그래서 무슨 쪽지가 왔던가 보러갔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이름은 지웠습니다)
  엑! 이게 뭐야! 돈이 필요하다니... 보통의 스팸성 광고! 드디어 오픈아이디 서비스까지 진출인가!!
  '돈이 필요해요ㅠㅠ'라는 내용으로 또 하나의 쪽지가 동일인에게 와 있었습니다. 그렇군... 광고 하나 하려고 이제 오픈ID까지 만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는요.

  이쯤에서 다양한 가설을 세웠지요. 안철수연구소를 궁지에 몰리게 하기 위한 경쟁업체[?]의 고도의 안티라든가...

  그래도 어떤 사람일까? 싶어서 이름을 눌러봤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오픈ID 정보가 있는 페이지로 연결이 되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 멀쩡한 사람이잖아?!?! ]
  .......
  예, 멀쩡한 사람이었죠. 갑자기 급전이 필요해져서 저에게만 돈이 필요해요ㅠㅠ 라는 슬픈 쪽지를 두번이나 '이 방법뿐이 없는 건가요?' 라는 하소연과 함께 올리셨을리도 없고... 전 혼란에 빠졌습니다. 좀 더 검색을 해보기로 했죠.
 
  아이디테일을 좀 더 살피던 중 다음과 같은 로그를 발견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
  ........ [ OOO님이 XXX님을 $4,610에 구매하였습니다. ]
  이게 뭐지?!
  아이디테일이 언제 인신매매 사업에 손을 댔지?!?!

  사회와 인류와 우주를 위해 공헌하기로 마음속으로 혼자 굳게 다짐했던 저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방문을 소홀히 했던 아이디테일 사이트를 좀 더 뒤져보았습니다.
  안철수연구소 고슴도치 플러스 블로그를 방문했더니 다음과 같은 사이트 안내가 있었습니다.
 '너는 펫' 이란 ?
 : 친구들을 나의 펫으로 사고 팔 수 있고 별명을 지어주거나 선물도 주면서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아이디테일의 재미있는 장난감이에요. ㅋㅋ ^-^ !
  아하? 친구들을 [나의 펫]으로 [사고][팔] 수 있군요!!! 그래 나도 친구들을 팔아서 엑박도 사고 아이마스도 사고... 아니 이게 아니지.
  ... 친구들을 왜 사고 파는거죠? [...] 아무튼 아이디테일에선 오픈ID를 매개로 해서 이런 SNS를 서비스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으로]이라는 페이지에서는 나의 주인님을 확인하는 코너 그리고 나의 가치를 확인해 주는 'OOO님의 현황' 그리고 '나의 소중한 펫들'과 친구가 선물해 준 '내가 받은 선물'이 있습니다.
(중략)
 내 펫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내 친구가 누구의 펫인지 실시간 감시(?)할 수 있다는 점이죠! ^^
  그렇군요... 주인님을 확인... 그리고 나의 가치를 확인...
  도망... 실시간 감시...

  사실, [너는펫] 같은 작품도 봤었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귀여워해서 펫으로 삼는다는 것에 대해서 증오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펫으로 삼는건 그렇다치고 돈으로 주고 사고 판다니... 어라 돈? 돈은 어디서 나오는걸까요? 현거래도 있는걸까요? [...]

★돈 버는 방법★

1. '너는 펫'에 가입하시면 $1,000을 드려요.
2. '너는 펫'에 접속하시면 하루에 세 번 $2,000을 드려요.

3.
'너는 펫'에 친구 한 명을 초대할 때마다 $1,000을 드려요.


 보통 캐쉬를 모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친구를 '너는 펫'에 초대하는 것이에요.
  아하 그렇군요. [...] 그러니까
  [ 돈이 필요해요ㅠㅠ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건가요 ] 라는 비장한 쪽지는
  펫을 위한 안타까운 애정의 손놀림이었던겁니다.
  돈이 필요했던거죠. [...]

  아이디테일 측에 하고싶은 이야기는, 오픈ID를 연계해서 뭔가 서비스를 하는건 좋지만 '왜' '무엇을 위해서'라는 지점이 빠진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네요. 동인녀/남들을 집중지원해주기 위한 서비스였다든가 주인-펫 시스템을 네트 사회에 확산시키기 위한 모종의 음모가 있다든가 하는게 아니라면 말이죠.
  너는펫 이라는 서비스는 해보고 싶고 그런데 사람들을 엮을 네트워크 기반은 그다지 존재하지 않아서- 펫을 사고 판다는 개념을 집어넣은 것 같은데 '가치'와 '금액'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집어넣은 것이죠? 실제적인 컨텐츠와 연결고리가 없어서 초대만 하면 돈을 주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네요. 결과적으로 이게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서비스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처음처럼 인신매매 사이트인가 라는 다소 오해스런 장난스런 인상만 남았네요.
  그러니까, 멀쩡하신 분이 '돈이 필요해요ㅠㅠ'라면서 쪽지 공세를 펼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8/07/23 15:15 2008/07/23 15:15

농담 같은 스토리

  농담도 아주 오래되어야 한다. 그 농담하는 방식 혹은 그 어법을 일러 소설이라 불렀다. 그런데 굳이 이를 가리켜 인류가 발명해 낸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 부르는까닭은 새삼 무엇인가. 아니, 대체 농담이란 무엇인가. 야유, 빈정댐, 비꼬기가 이에 해당되지 않겠는가. 이른바 아이러니라 부르는 어법이 그것. 어째서 이 어법을 여자들, 아이들, 그리고 혁명가들이 제일 싫어할까. 이 물음에 민첩하게 대답한 사람이 조세프 콘라드였다. 고결한 소질, 신념, 헌신, 행동 등의 덕목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어법이 농담이다.
  유독 농담이 사람들을 못살게 굴거나 성내게 한다든가 공격한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세계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인식케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가진 확신을 빼앗거나 흔들리게 하기 까닭이다.
- 김윤식, "소설을 왜 오래된 농담이라 하는가", 한국일보 2001. 2. 20 중에서

  '오래된 정원'이나 '아주 오래된 농담'에 부쳐진 글을 인용하는게 겸연쩍지만 7년 전의 기사이니 누가 알겠는가. 굵게 표시한 부분은 기사에도 짧은 부제로 요약되어 있었는데 꽤 마음에 들었다.

  글쓰기를 세계를 창조해내는 일이라 하면 어폐가 있겠지만, 적어도 글을 중심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붓 가는걸 다듬어 그걸 해석해내는 작업임은 분명하다. 세계는 아리송하다. 불가해한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완전해를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학에는 농담이 있어야 한다. 왜?
  당대의 전망은 당대의 닫힌 맥락 안에서 구성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