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성카틀레야 유치원 - 6점
야부 케이스케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사립 성 카틀레야 유치원 1권
- 어른의 유치원, 이미 어른이야?

  <사립 성 카틀레야 유치원(이하 카틀레야)>의 스토리가 다른 유치원 소재의 작품에 비해 부드럽게 진행되는 것은 <카틀레야>의 아이들이 굳이 어른을 모방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이’와 ‘어른’이라는 뻔한 대립 혹은 모방의 구도가 여기서는 생략되어 있는데, 아이들은 미숙한 이해나 성장에 대한 욕구를 표출하기보다는 어른의 시선 자체로 세상을 보고 있다.
  이미 ‘어른’인 어른에 비해 아직 어른이 아닌 어른은 자유롭다. 그렇기에 아이는 어른의 문법을 이해하면서도 은근히 놀리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부모의 역할이나 경제력, 가정의 화목함 등과 관계없이 대부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두는데 이를 유치원생의 범주에 넣고 생각하기엔 너무 정신적인 자립도가 높은 것이다.
  <카틀레야>에는 교사가 아이들을 훈육하는 장면은 잘 나오지 않는다. 이는 작품의 초점이 주로 아이들에 맞춰져 있는 점에서도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데, 억지로 ‘가르침’을 삽입할 필요가 없는건 아이들 스스로 세상의 룰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데, 그런 문법을 가지고 놀거나(아카네 토코), 그냥 내버려두거나(야마사키), 한눈을 팔고 있다(쿠로다). 세상을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동화되어 있는 것이다.
  어른인 교사 세 명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독자의 시선으로 볼 때 그다지 유리되어 있진 않다. 차라리 그것은 여고생이 좋았지만 내려오다 보니 유치원이었기(쿠로다) 때문이며, 본업보다는 밤의 일이 수입이 더 많기 때문이고(아카네 토코), 아들보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야마사키)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좀처럼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이 이 만화의 장점이다.
  전체적으로 네컷만화의 구성을 따르고 있으며 중간중간 에피소드 단편이 들어가기도 한다. 유치원스럽지는 않다는 점에서 능글느끼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썼음에도 ‘역시 애들’이다 싶은 부분도 있고 일방적인 호감에 바보 같은 캐릭터로 변해가는 남선생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단순해서 뻔한 구도보다는 흥미로운 어른 유치원생 이야기에 끌린다면 추천.

하나마루 유치원 1 - 6점
Yuto 지음/서울문화사(만화)
  하나마루 유치원 1권
  - 어른의 유치원, 어른이 되고 싶어

  유치원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쟁탈전이라고 할까. 남교사를 좋아하는 아이와 동료 여교사를 좋아하는 남교사. 유치원을 소재로 하는 다른 작품 <성 카틀레야 유치원>에 비교하면 상당히 간단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작품의 진행도 분명한 대비를 가지고 있는데, 성인 남성으로부터 관심/애정을 얻고자 하는 여성 아동과, 성인 여성 동료로부터 관심/애정을 얻고자 하는 성인 남성의 두 축이다. 이것은 계층이라기보다는 물고 물리는 고리를 형성하며 느긋하고 안정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하는데, 작가가 소아성애자를 그리지 않는 이상 성인과 아동의 정서적 친밀감은 성인의 에로스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도를 설정할 때 필연적으로 그러하듯이, 안즈는 끊임없이 성인을 모방하며 츳치를 사로잡으려 한다. 친구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일정한 성인들의 행동양태를 흉내내려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데 이것이 귀여움을 자아낸다. 성인과 같은 모습이 되면 사랑을 얻을 수 있을거라는 욕망은 한번 꿈으로 분출되는데 이것이 프로이트식 작동 방식을 끼워넣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꿈에서도 아동의 심리는 일관성을 띠고 유지되며 독자는 여전히 느긋함을 가지고 관찰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유치원 또한 교육기관 중 하나다. 등장하는 성인 교사 두 명 역시 아이들을 훈육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며, 큰 장애 없이 이를 수행해나간다. 아동이 비록 성인을 모방하며 에로스를 꿈꿀지라도, 교사가 보여주는 관심과 애정의 수준이 일정 이상에 도달하면 그것을 ‘달성했다’고 믿는 것이다.
  구도가 너무 간단하면 변수나 긴장감이 사라진다는 방향으로 탄탄해지는데, 아이들의 성인 모방으로 벌어지는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에 만족한다면 구입을 그리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토리 자체로 보면 아직 극화를 이루기 위해 많은 부분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림체도 그렇지만 등장하는 유치원 아이들은 충분히 귀엽다. 비교할만한 작품인 <성 카틀레야 유치원>의 능글느끼함이 싫다면 시도해 볼 만한 작품이긴 하다.

파천황유희 II

2008/08/07 23:10
파천황유희 2 - 6점
엔도 미나리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자신감으로 가득할수록 좌절을 맛보는 아픔도 클까. 엔간한 실력은 갖춘 마법사 같지만, 라젤은 이번 권에서 꽤 울게 되는 것 같다.
  동료의 과거를 알고 싶고, 동료의 신뢰를 얻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사람을 구하고 싶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이유를 찾아내고 싶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진행되는 것은 사건일 뿐, 인물들의 과거를 조금씩 암시해주기는 하지만 이번 편에서 드러나진 않는다. 보이는 것은 흑막과 상처와 아픔이다. 그래도 라젤의 상태는 1권보다는 더 안정기에 돌입한 듯하다.
  이런 우울할 법한 스토리에도, 라젤의 걱정없는 유쾌함이 남아있는게 물론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것이 성장물인가, 그것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유희'를 끝까지 실천하고 있는 라젤의 앞으로가 기대된달까.

파천황유희 I : 귀여운 허세의 매력

2008/08/07 23:02
파천황유희 1 - 8점
엔도 미나리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세상을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깨닫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 대답이야 어쨌든 라젤은 아버지 덕에 그 순간을 일찍 체험하게 된 것만은 틀림없다. 소파에 편히 앉아 눈을 반짝이던 딸에 속이 불편해서인지도 모르지만, 경험을 쌓으라는 짤막한 말과 함께 제법 얄팍하게 문 밖으로 던져진 신세다.
  그래서 삽시간에 집과 가족을 잃은 소녀는 훌쩍거리며 성냥을 팔다가 눈더미 위에 쓰러지…는 게 아니라, 끝내주게 쿨한 열네살의 미소녀 라젤이다. 감정이 지나치게 많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나이의 라젤인 것이다. 모든걸 치기와 허세로 치부하기엔 여러분의 라젤은 꽤나 귀여울 정도다.
  이 작품은 성장물인가. 일단은 그런 요소도 있다고 해두는 편이 좋겠다. 혼자가 된 라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동행을 찾는 일, 가장 먼저 배우는 일은 동료를 만드는 일, 자존심을 버리는 것도 제법 괜찮다는 걸 깨닫는 일.
  감정이 많고 사건이 짧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점이 단점이지만, 짤막짤막한 개그 타이밍이 작품의 백미다. 그리고 대책 없이도 어떻게든 될거라는 미소를 보여주는 라젤의 매력이 이 작품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망상소녀 오타쿠걸 1권

2008/08/03 23:59
망상소녀 오타쿠걸 1 - 6점
나츠미 콘조 지음/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이 책의 띠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야오녀의 눈으로 사랑을 하고 있어요♡ 야오녀들의 필독서!!]

  그런데 모 지인의 협찬으로 읽게 된 저의 소감으론, 이 문구는 작품을 요약하는데 별로 쓸모있는 도구가 아닙니다. 뒷면에 써둔 [남자 오타쿠들의 리얼 스토리가 <현시연>이라면, 여자 오타쿠들의 리얼 스토리는 바로 이것!!]이라는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야오녀의 눈으로 '사랑'을 하고 있지 않으며 야오녀들의 '필독서' 또한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쓸데없는데 태클을 거는게 제 장점입니다)

  작품은 제법 재미있었습니다. '남의 망상을 보고 깔깔거릴 수 있다'는건 유쾌한 일이라서요. 망상의 주된 내용은 부녀자들의 커플링 현실 적용입니다. 누구와 누구는 커플링하면 참 재미있겠다 어울리지 않니? 누가 수일까? 뭐 이런 것 말이죠. (클래스메이트를 썩은 눈으로 바라보지 말자는 누구의 충고는 무시합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내용은 부녀자스러울지언정, 작품이 구현하고 있는 구도는 친구 부녀자들을 관찰하는 입장의 남학생 주인공의 시점에서 그려진다는 것이죠. 시점이 뒤바뀌면서 관찰을 하는 대상이 다시 독자로 하여금 관찰을 당하는 이중 구조를 만들었는데요.
  여기서 다시 상기해야 할 점은 이런 구조는 부녀자의 시점으로 세상을 구성해서 보여주는게 아니라, 그걸 관찰해나가고 이해하려고 하는 남성의 시선을 보여주기에 알맞은 틀이라는 것. 망상의 내용도 가지가지지만 그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배리에이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적당히 가벼운데, 물론 야오이가 소재인 야오이 만화에 너무 많은걸 바라면 안되겠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소재만 빼곤 딱히 여성향도 아닌 이 작품이 야오녀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할 이유를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홍보문구라고 해도 말이죠.

  더구나 '야오녀의 눈으로 사랑을 한다'라고 하는건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네요. 우선 '사랑'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린 고등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이 작품에서 가장 뚜렷하게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남주인공 아베 혼자 정도일까요. 아사이는 망상의 세계에서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커플링에 지속적으로 두 남자친구들을 대입시키지만 자기가 사랑의 대상이 된다는걸 굉장히 상상하기 힘들어하죠. 1권의 마지막에서 겨우 다른 커플링을 생각해냄으로써 자신을 망상의 일부로 대치시켜놓지만 여전히 그 불안한 연상관계는 사랑이라는 직접적인 형태의 주문에는 어긋나지 않나요? 그러니까 '야오녀의 눈'으로 사랑을 한다는건 더더욱 어불성설인거죠.

  구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사이를 짝사랑하는 아베의 당황에 당황을 잇는 반응들이 그저 귀엽습니다. 노멀/여성향/남성향 가리지 않는 취향을 가진 분이라면 적절히 웃으면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동인녀들의 구미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쪽이 아닐까합니다.

카시마시 1권을 보았습니다

2008/03/20 00:23
카시마시 1 - 6점
아카호리 사토루 지음/학산문화사(만화)
  [ 이하의 내용은 스포일러/네타바레/미리니름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

  지난 주 서울 모처의 서점에 놀러갔다가 S모님의 권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걸 사시는거예요!"
  제 손에는 카시마시 코믹스 1권이 들려있었습니다.
  '답례로 읽고 나면 포스팅을 하도록 할게요'라고 했으므로... 좀 늦었지만,

  써볼까 합니다.

  카시마시는 타겟을 명확히 설정한(노리고 들어온) 백합물입니다. 주인공인 하즈무는 소년이었지만 외계인과의 딥 키스로 소녀가 되었다... 라는 전개입니다만 남성일 때의 스토리를 등장 유무에 관계없이 계산해봐도 20페이지 밖에 안 됩니다.
  즉 외형상으로는 두 명의 친구 야스나, 토마리와 함께 세 명의 소녀가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는 girl meets girl이라는 부제에서도 드러납니다)

  캐릭터의 성별이 바뀐 작품을 '바뀌었다'라는 점에서 주목한다면 성 변환(성전환이라 쓰지 않음을 유의)이 단순한 설정에 불과한지 혹은 작품의 주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볼 수 있겠지요. 그로부터 이야기의 전개에 성 변환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건져낼 수 있을겁니다.
 
  우주선과의 사고가 하즈무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화시키고 모든 전개의 시발점으로 작용하는 극적 장치인 것은 분명합니다. 작가가 여자를 그리는게 좋아서라든가 남자 주인공에게 여자를 한 명 더 붙여 할렘을 완성시키려는 식의 의도는 아닌, 설정상의 중요한 도구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 변환에는 커다란 개연성이 보이지 않고, 주변인은 물론 하즈무 본인도 성 변환에 대한 정체성의 괴리감을 그다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소 놀랍긴 하지만 그저 주어진 운명과도 같고, 받아들이고 적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쪽이지요. 주목받는 것은 단지 인물들 사이의 관계뿐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처음부터 '여성'인 하즈무를 상정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시마시를 트랜스물로 분류하는 것은 다소 위화감이 있습니다. 성이 바뀌었다는 사실에 대한 고민이나 인물의 유형 변화도 없다시피한 작품에 말이죠. 개인의 자각이나 능동적인 행위로서의 성전환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갑자기 주어진, 수동적인 성 변환이 어울리는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 변환은 작품의 장르를 일변하지 않으며(처음부터 백합이므로) 취향에 국한한 코드를 부여할 뿐입니다.

  이 작품을 남성향 백합 판타지로 규정하면, 카시마시는 보기 거북하지 않은 설정 필터를 하나 추가한 셈입니다. 가령 하즈무를 한 때 남성이었던 인물로 계속 인식하고 있으면 여고생 간의 연애 감정이 불편하지 않게 비칠 수도 있습니다. 백합 코드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면죄부가 될 수 있겠지요. 같은 이유로 남자인 친구 아스타는 중간중간 등장하여 하즈무의 과거를 일깨우지만 곧바로 무시되어 버립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하즈무의 성 변환이 작품의 특이 요소이며 주된 이야깃거리지만, 여성인 하즈무에게는 오히려 남성이었을 때의 자신/자신의 기억이 충격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까의 말을 빌리자면 외부의 충격이라 할까요. 카시마시 1권은 남성을 잊으려 하는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구성할까요 ─ 여성이고자 했던 하즈무는 우주선 충돌 전에 야스나에게 고백한 일이 풀리지 않자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소원을 중얼거리는 도중 사고가 발생하고, 성 변환이 이루어진 뒤 처음 맞이하는 얼굴샷에서 하즈무는 미소를 띠고 있지요. 소망이 이루어진 겁니다. 여자아이의 옷을 입고, 여자아이의 행동거지를 하고, 여자아이의 속옷을 마련합니다.
  다만 아직 어찌할 수 없는 것은 남성으로서의 자의식.
 
  우주선의 충돌은 남성 하즈무라는 과거를 부여해주었습니다. 하즈무가 '이제는 여자니까'라고 미소지으며 여자아이를 학습해나가는 건 여자아이가 될 수 없었던 남성이었다는 과거에 대한 반추. 야스나가 하즈무에게 고백해오자 처음에 '이제는 여자니까'라며 달려나갔던건 '과거엔 남자였으니까'라는 인식. 여고생의 모습이지만, 자신을 칭하는 僕(ぼく)라는 대명사는 여전히 남성어입니다. (이것 또한 남성향 판타지로서 남성 독자가 하즈무에 자신을 대입하며 읽기에 편리한 설정을 만들기도 합니다만)

  하즈무는 같은 여성에게 보살핌을 받고(토마리), 남성이 배제된 시각으로부터 존재를 인식당하면서(야스나) 점차 여성이 되어갑니다. 권말의 야스나의 키스는 남성이었던 과거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성을 잊으면서 비로소 백합 삼각관계가 완성되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 흥미있는 설정이긴 하지만, 좋다고 평가할 정도의 작품은 아니네요. 개그나 서비스컷들이 조금 즐겁지 아니한 것도 아니지만 [...] 어중간한 장치나 구도, 남성성을 간직한 채 의문으로 꺼내지도 않으면서 곧바로 삼각관계로 뛰어넘어가버리는 설정은 저를 미묘하게 불편하게 만듭니다.

  추가로, 장 푸우의 オネニーサマ가 오랍언니라고 제법 근사하게 번역되었다가 정식 번역판에는 언빠님이 된 것은 아쉽군요. 어차피 두 단어의 합성어라고 보면, 시간순으로 보았을 때도 남성->여성이고 현재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언니 쪽이 ~빠님인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