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이 글은 <은반 컬라이도스코프> 7권에 대한 스포일러/네타바레/미리니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본문은 작품의 내용 및 전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 있습니다.
짤막한 감상...은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시력이 더 이상 나빠질 곳이 없는 분들만 클릭을 해주시길...
그리고 [안보실 분들은 상관없으나 읽고 계신 분들은] 7권을 다 읽은 분만 클릭해주시길 진심으로 기도해봅니다.
작가가 던진 떡밥을 열심히 승화시켜서 원작에 충실한 (이래도 되는거냐) 망상을 해보았습니다.
대사는 99% 묘사는 80% 원작의 것입니다 [...그럼 잽싸게 도망을]
짤막한 감상...은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시력이 더 이상 나빠질 곳이 없는 분들만 클릭을 해주시길...
그리고 [안보실 분들은 상관없으나 읽고 계신 분들은] 7권을 다 읽은 분만 클릭해주시길 진심으로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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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반 컬라이도스코프
- 리아 가넷의 사정
1
"아주 즐거워."
"나도 그래."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100억 달러의 미소로.
"정말로 뭔가 채워진 듯한 기분이야. 행복해..."
어? 하는 순간 그렇게 말하며 가브리가 내 어깨에 뺨을 기댔다.
"저기, 가브리."
"응?"
엷은 색의 맑은, 투명하게 맑은 눈동자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심술궂은 생각을 자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깝다. 모처럼 얻은 우연한 기회니까.
"저기..."
비뚤어짐도 거북함도 없는 성녀의 미소가 나를 돌아봐서 나는 다시 긴장했다.
"안드레아하고 데이트 시켜줘."
"풋,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핫!"
나도 모르게 엉거주춤 일어설 뻔 했다.
"그 사람이라도 괜찮다면 상관없는데."
가브리는 거기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 보여도 실은 부끄럼을 잘 타.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나를 위해 '프린스' 타즈사를 준비해줘."
"그때는 기꺼이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성녀님."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그녀와 이야기한다. 그것만으로도 행복이 흘러넘친다.
"역시 가브리는 굉장해... 다정하고, 매력적이고, 아주 따스하고."
내 이름은 사쿠라노 타즈사. 이 세상에서 가장 죄 많은 여자.
2
ㅡ너는 신용할 수 있어. 진심밖에 말하지 않으니까.
그것은 리아가 내게 해 준 소중한 칭찬이었다.
"그렇구나."
리아의 반응에 어떠한 억양은 없었다. 흐릿한 공백 속에 채워진 내 갈등을 눈치 챘는지 못 챘는지...
"타즈사, 정말로 이틀밖에 안 묵을거야?"
"응, 그럴 생각이야."
푸르고 커다란 눈동자에 떠오른 작은 곤혹스러움에 나는 조금 심술궂은 만족감을 느꼈다.
"좀 더 느긋하게 쉬다 가도 되는데.."
그녀답지 않게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리아는 여전히 끼고 있던 안경에 검지를 갔다 댔다.
"타즈사만 원한다면..."
"응?"
"앞으로 이틀쯤 잠을 안 자도 괜찮은데."
"......"
"타즈사, 얼굴이 빨개."
"...저기, 리아."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확인해 보기로 했다.
"혹시, 이 성..."
"맞아. 타즈사가 온다고 해서 특별히 존에게 의뢰했어."
"...하하. 그렇구나."
ㅡ너는 신용할 수 있어. 진심밖에 말하지 않으니까.
그것은 리아가 내게 해 준 소중한 칭찬이었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갚아나가게 될런지. 지금 이때, 리아의 흥미의 대상은... 나일까?
"그만 잘까?"
당연한 물음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내 머릿속에서...
ㅡ이틀쯤 잠을 안 자도 괜찮은데.
아까 들었던 대화가 재현되고...
3
아득히 높은 돔 모양의 천장에서 내려오는 햇살이 프린세스의 평화로운 아침을 장식했다. 마음을 채우는 행복과 살며시 끓어오르는 불안.
"힉?!"
리아였다.
"네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언제부터?"
"한 시간쯤 전부터."
나는 말을 잃었다.
"그냥 깨우지 그랬어."
"타즈사를 기다렸거든."
"으아, 미안해."
초조해진 나는 서둘러 침실 밖으러 향하려다...
"앗!"
말없는 지적을 깨달은 나는 곧바로 침실 창문을 쳐다보았다.
[ 사쿠라노 타즈사, 나와 결혼해 줘.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리아 가넷 쥬이티에프 ]
4
"굉장해..."
눈앞의 광경은 세세한 사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꽃으로 장식되어 햇살을 받고 반짝이고 있는 여제(女帝)의 침묵이 함께 만들어내는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니, 정신차려야 한다. 이건 혹시나 리아가 나에게 청혼?! 어째서? 거짓말. 말도 안돼. 아... 역시 침착해질 수가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타즈사, 멈춰."
"응? 왜 그래?"
뒤쪽을 돌아보자, 몇 걸음 뒤에 발을 멈춘 리아가...
"그 이상 가면 열선이 작동해."
"여, 열선?"
"안전 경비 시스템이야. 건드리면 한순간에 숯덩이가..."
"힉!"
반사적으로 뒤로 뛰어 물러섰다. 그러나 다리가 엉켜 제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더욱 당황한 나는 필사적으로 리아의 발치까지 뒤로 물러서고...
"농담이야."
"..."
잔디가 붙은 두 손으로 상체를 지지한 채, 나는 리아를 올려다 봤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말려 올라간 스커트도 그대로 둔 채.
"너란 애는 정말로 믿을 수가 없어..."
나는 간신히 제대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타즈사가 먼저 그런 짓을 해버리지 않았어?'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리아는 눈을 감은 채 입가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그런데 그런 짓이라니? ...설마, 안드레아 벤지니?
"잠깐 옷을 갈아입으러..."
리아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이다... 잠깐, 조금이라도 설명 정도는 해달라구!
5
리아의 얼굴에서 약간의 미소를 보고 나는 안도했다. 그러나 그와 거의 동시에, 모든 것이 멈췄다. 나는... 모든 것을 동결시킨 내 몸을, 입을... 두 손으로 덮고 있었다. 앞에는 내가 세상의 누구보다도 동경하는 연하의 러시아 소녀. 램프가 리아의 모습을 보다 요염하게 떠오르게 한다.
크림색의 트리코트로 된 바탕천을 허리의 새턴 리본으로 고정하고, 옷소매가 목덜미에 엷은 핑크색 레이스 프릴을 풍성히 사용한, 공주님 같은 네글리제. 단순한 잠옷치고는 너무나... 아니, 그러니까!
실내에 두 사람. 이 배 전체에 단둘이다. 딱 좋은 넓이의 선실. 나는 리아의 특수한 프리즘에 주눅 들었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매력의 일부라고 말할 수 없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이 시간을 실컷 맛보기 위해서는 그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타즈사?"
"아..."
한숨짓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 작게 고개를 갸웃거린 리아...
"지루해?"
"그런거 아냐!"
쾌락이나 환상이 멋진 것일수록 불가피한 업보도 깊기 마련이다. 그래서,
"혹시 옛날의 첫사랑이라든가..."
샴페인을 입에 머금으며 다시 심술쟁이 모드로 밀어붙여 본다.
"그런 건 없어."
"그럼 누구?"
하지만 리아는 시선도 피하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너."
"푸헥!"
뭐라고...?
"타즈사, 얼굴이 빨개. 타즈사는 싫어?"
"그럴 리가. 당치도 않아."
당황하는 내게 리아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그러니까 타즈사도 사양할 필요 없어."
"으, 으응..."
"그럼 '타즈사 로즈'라고 이름 붙일게."
거절할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끝까지 거절했겠지만, 리아였기 때문에 더욱. 꼭 장미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리아가 꼭 해야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거절하지 않는다. 어떤 때라도, 어떤 용건이라도...
6
부서진 인형을 연기하는 나.
그녀의 작은 입술이 약간 벌어지고...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는 무서웠다. 이 이상 이 낙원에 머무르다간...
"이제 잘까?"
이 말을 꺼내는데 또 다시 용기를 쥐어 짜냈다.
"알았어."
리아는 끄덕였다. 끄덕여 주었다. '벌써 자는 거야?' 하는 불만스러운 눈치는 전혀 없이. 담담하게.
"무, 무, 무슨?!"
"같이 자자고."
"......!"
나는 곧바로 몸이 튀어 올랐고... 그 뒤론 멋대로 이루어졌다. 정신적인 동요가 문제였는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리아를 안은 채 침대 위에서 푹 쓰러지게 되었다.
"네, 네글리제는 어쨌어?!"
"더워서."
"이런 차림을 하고.."
속옷 한 장 뿐인 리아가 내 옆에. 거의 제로거리에. 램프의 불빛에 비친 그 모습은 환상과 금기가 한데 뒤엉켜 있는... 숭고한 오라와 겉모습의 미숙함, 그 기묘한 융합이 초래하는 금단의 향기. 반 정도 패닉을 일으킨 내 앞에서, 베갯머리까지 다가온 몸의 실루엣이 보다 선명히... 우와와와와왓! 도망칠 곳을 찾으려 해도 다리가 풀려서 어쩌지도 못하겠다.
"왜 그래?"
다가온 리아의 얼굴, 그 숨결에... 나는 상체를 젖혔다. 내 얼굴이 뜨겁다. 상기... 아니 김이 피어오를 것 같다.
"지, 진심이야?"
"당연하지."
양팔과 양다리를 내 위에 올리고 이쪽을 바라보는 리아는... 뭐랄까, 엄청나게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 잠깐!"
밀려 쓰러졌다. 등이 침대에 푹 파묻히고, 몸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베개에 파묻힌 내 머리를 포위하듯이 리아의 두 팔이 갈 곳을 막고 있었다.
"약속했잖아, 같이 잔다고... 나랑 자는거 싫어?"
"그, 그런 건... 아니지만..."
바로 위에서 압박하는 자세, 당황하면서도 나는 전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럼 문제없어. 가만히 있어."
천상의 목소리가 날아내렸다.
"응..."
그녀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고...
사쿠라노 타즈사, 19세.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와아아아앗! 내 위에 올라탄 리아. 머릿속에서 비명이 작렬하고 산산이 흩어졌다. 이제 안 할게요! 발칙한 생각은 안 할게요! 안드레아랑 바람 안 피울게요! 용서해주세요!
7
"잘 어울립니다, 아가씨."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존 씨의 칭찬에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 리아는, 여전히 당황하는 내 맞은편에 앉아 어느새 기운을 잃고 있던 내 손의 꽂다발을 바로잡아주었다.
"다시 한 번,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존 씨가 미소 이상의 웃음을 지었다.
"이런 인생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가볍게 웃는 나의 마음은 지금은 조금 얌전해졌다.
"러시아어라면 내가 가르쳐 줄 수도 있는데."
나는 급작스런 결혼축하연에서 갑자기 어학으로 넘어간 리아의 이야기를 따라잡지 못했다.
"왜 내가 러시아어를?"
"타즈사가 국적을 박탈당할 경우를 생각해서. 만약 그때는 내가 너를 러시아 정부에 추천해 줄게."
"하하, 고마워."
그녀이 행로는 이런 말이 농담이 되지 않을 만큼 평범함과는 멀리 떨어진 인생이다. 절대 유일의 여자 운동선수이자, 대 러시아의 보물. 내가 누구보다 동경한... 구름 위의, 천계 위의 존재. 그런 사람이, 그 리아 가넷이...
'타즈사는 나만의 것이야'
"리아..."
나는 키스까지도 가능한 위치에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떨리는 손가락을 조심스레 가져갔다. 그녀를 안은 손에 힘이 실린다. 맹세해도 좋다. 절대로 질리지 않는다. 설령 지금 이 때가 영원히 이어진다고 해도...
- 리아 가넷의 사정
1
"아주 즐거워."
"나도 그래."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100억 달러의 미소로.
"정말로 뭔가 채워진 듯한 기분이야. 행복해..."
어? 하는 순간 그렇게 말하며 가브리가 내 어깨에 뺨을 기댔다.
"저기, 가브리."
"응?"
엷은 색의 맑은, 투명하게 맑은 눈동자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심술궂은 생각을 자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깝다. 모처럼 얻은 우연한 기회니까.
"저기..."
비뚤어짐도 거북함도 없는 성녀의 미소가 나를 돌아봐서 나는 다시 긴장했다.
"안드레아하고 데이트 시켜줘."
"풋,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핫!"
나도 모르게 엉거주춤 일어설 뻔 했다.
"그 사람이라도 괜찮다면 상관없는데."
가브리는 거기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 보여도 실은 부끄럼을 잘 타.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나를 위해 '프린스' 타즈사를 준비해줘."
"그때는 기꺼이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성녀님."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그녀와 이야기한다. 그것만으로도 행복이 흘러넘친다.
"역시 가브리는 굉장해... 다정하고, 매력적이고, 아주 따스하고."
내 이름은 사쿠라노 타즈사. 이 세상에서 가장 죄 많은 여자.
2
ㅡ너는 신용할 수 있어. 진심밖에 말하지 않으니까.
그것은 리아가 내게 해 준 소중한 칭찬이었다.
"그렇구나."
리아의 반응에 어떠한 억양은 없었다. 흐릿한 공백 속에 채워진 내 갈등을 눈치 챘는지 못 챘는지...
"타즈사, 정말로 이틀밖에 안 묵을거야?"
"응, 그럴 생각이야."
푸르고 커다란 눈동자에 떠오른 작은 곤혹스러움에 나는 조금 심술궂은 만족감을 느꼈다.
"좀 더 느긋하게 쉬다 가도 되는데.."
그녀답지 않게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리아는 여전히 끼고 있던 안경에 검지를 갔다 댔다.
"타즈사만 원한다면..."
"응?"
"앞으로 이틀쯤 잠을 안 자도 괜찮은데."
"......"
"타즈사, 얼굴이 빨개."
"...저기, 리아."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확인해 보기로 했다.
"혹시, 이 성..."
"맞아. 타즈사가 온다고 해서 특별히 존에게 의뢰했어."
"...하하. 그렇구나."
ㅡ너는 신용할 수 있어. 진심밖에 말하지 않으니까.
그것은 리아가 내게 해 준 소중한 칭찬이었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갚아나가게 될런지. 지금 이때, 리아의 흥미의 대상은... 나일까?
"그만 잘까?"
당연한 물음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내 머릿속에서...
ㅡ이틀쯤 잠을 안 자도 괜찮은데.
아까 들었던 대화가 재현되고...
3
아득히 높은 돔 모양의 천장에서 내려오는 햇살이 프린세스의 평화로운 아침을 장식했다. 마음을 채우는 행복과 살며시 끓어오르는 불안.
"힉?!"
리아였다.
"네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언제부터?"
"한 시간쯤 전부터."
나는 말을 잃었다.
"그냥 깨우지 그랬어."
"타즈사를 기다렸거든."
"으아, 미안해."
초조해진 나는 서둘러 침실 밖으러 향하려다...
"앗!"
말없는 지적을 깨달은 나는 곧바로 침실 창문을 쳐다보았다.
[ 사쿠라노 타즈사, 나와 결혼해 줘.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리아 가넷 쥬이티에프 ]
4
"굉장해..."
눈앞의 광경은 세세한 사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꽃으로 장식되어 햇살을 받고 반짝이고 있는 여제(女帝)의 침묵이 함께 만들어내는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니, 정신차려야 한다. 이건 혹시나 리아가 나에게 청혼?! 어째서? 거짓말. 말도 안돼. 아... 역시 침착해질 수가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타즈사, 멈춰."
"응? 왜 그래?"
뒤쪽을 돌아보자, 몇 걸음 뒤에 발을 멈춘 리아가...
"그 이상 가면 열선이 작동해."
"여, 열선?"
"안전 경비 시스템이야. 건드리면 한순간에 숯덩이가..."
"힉!"
반사적으로 뒤로 뛰어 물러섰다. 그러나 다리가 엉켜 제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더욱 당황한 나는 필사적으로 리아의 발치까지 뒤로 물러서고...
"농담이야."
"..."
잔디가 붙은 두 손으로 상체를 지지한 채, 나는 리아를 올려다 봤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말려 올라간 스커트도 그대로 둔 채.
"너란 애는 정말로 믿을 수가 없어..."
나는 간신히 제대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타즈사가 먼저 그런 짓을 해버리지 않았어?'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리아는 눈을 감은 채 입가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그런데 그런 짓이라니? ...설마, 안드레아 벤지니?
"잠깐 옷을 갈아입으러..."
리아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이다... 잠깐, 조금이라도 설명 정도는 해달라구!
5
리아의 얼굴에서 약간의 미소를 보고 나는 안도했다. 그러나 그와 거의 동시에, 모든 것이 멈췄다. 나는... 모든 것을 동결시킨 내 몸을, 입을... 두 손으로 덮고 있었다. 앞에는 내가 세상의 누구보다도 동경하는 연하의 러시아 소녀. 램프가 리아의 모습을 보다 요염하게 떠오르게 한다.
크림색의 트리코트로 된 바탕천을 허리의 새턴 리본으로 고정하고, 옷소매가 목덜미에 엷은 핑크색 레이스 프릴을 풍성히 사용한, 공주님 같은 네글리제. 단순한 잠옷치고는 너무나... 아니, 그러니까!
실내에 두 사람. 이 배 전체에 단둘이다. 딱 좋은 넓이의 선실. 나는 리아의 특수한 프리즘에 주눅 들었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매력의 일부라고 말할 수 없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이 시간을 실컷 맛보기 위해서는 그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타즈사?"
"아..."
한숨짓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 작게 고개를 갸웃거린 리아...
"지루해?"
"그런거 아냐!"
쾌락이나 환상이 멋진 것일수록 불가피한 업보도 깊기 마련이다. 그래서,
"혹시 옛날의 첫사랑이라든가..."
샴페인을 입에 머금으며 다시 심술쟁이 모드로 밀어붙여 본다.
"그런 건 없어."
"그럼 누구?"
하지만 리아는 시선도 피하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너."
"푸헥!"
뭐라고...?
"타즈사, 얼굴이 빨개. 타즈사는 싫어?"
"그럴 리가. 당치도 않아."
당황하는 내게 리아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그러니까 타즈사도 사양할 필요 없어."
"으, 으응..."
"그럼 '타즈사 로즈'라고 이름 붙일게."
거절할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끝까지 거절했겠지만, 리아였기 때문에 더욱. 꼭 장미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리아가 꼭 해야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거절하지 않는다. 어떤 때라도, 어떤 용건이라도...
6
부서진 인형을 연기하는 나.
그녀의 작은 입술이 약간 벌어지고...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는 무서웠다. 이 이상 이 낙원에 머무르다간...
"이제 잘까?"
이 말을 꺼내는데 또 다시 용기를 쥐어 짜냈다.
"알았어."
리아는 끄덕였다. 끄덕여 주었다. '벌써 자는 거야?' 하는 불만스러운 눈치는 전혀 없이. 담담하게.
"무, 무, 무슨?!"
"같이 자자고."
"......!"
나는 곧바로 몸이 튀어 올랐고... 그 뒤론 멋대로 이루어졌다. 정신적인 동요가 문제였는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리아를 안은 채 침대 위에서 푹 쓰러지게 되었다.
"네, 네글리제는 어쨌어?!"
"더워서."
"이런 차림을 하고.."
속옷 한 장 뿐인 리아가 내 옆에. 거의 제로거리에. 램프의 불빛에 비친 그 모습은 환상과 금기가 한데 뒤엉켜 있는... 숭고한 오라와 겉모습의 미숙함, 그 기묘한 융합이 초래하는 금단의 향기. 반 정도 패닉을 일으킨 내 앞에서, 베갯머리까지 다가온 몸의 실루엣이 보다 선명히... 우와와와와왓! 도망칠 곳을 찾으려 해도 다리가 풀려서 어쩌지도 못하겠다.
"왜 그래?"
다가온 리아의 얼굴, 그 숨결에... 나는 상체를 젖혔다. 내 얼굴이 뜨겁다. 상기... 아니 김이 피어오를 것 같다.
"지, 진심이야?"
"당연하지."
양팔과 양다리를 내 위에 올리고 이쪽을 바라보는 리아는... 뭐랄까, 엄청나게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 잠깐!"
밀려 쓰러졌다. 등이 침대에 푹 파묻히고, 몸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베개에 파묻힌 내 머리를 포위하듯이 리아의 두 팔이 갈 곳을 막고 있었다.
"약속했잖아, 같이 잔다고... 나랑 자는거 싫어?"
"그, 그런 건... 아니지만..."
바로 위에서 압박하는 자세, 당황하면서도 나는 전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럼 문제없어. 가만히 있어."
천상의 목소리가 날아내렸다.
"응..."
그녀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고...
사쿠라노 타즈사, 19세.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와아아아앗! 내 위에 올라탄 리아. 머릿속에서 비명이 작렬하고 산산이 흩어졌다. 이제 안 할게요! 발칙한 생각은 안 할게요! 안드레아랑 바람 안 피울게요! 용서해주세요!
7
"잘 어울립니다, 아가씨."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존 씨의 칭찬에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 리아는, 여전히 당황하는 내 맞은편에 앉아 어느새 기운을 잃고 있던 내 손의 꽂다발을 바로잡아주었다.
"다시 한 번,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존 씨가 미소 이상의 웃음을 지었다.
"이런 인생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가볍게 웃는 나의 마음은 지금은 조금 얌전해졌다.
"러시아어라면 내가 가르쳐 줄 수도 있는데."
나는 급작스런 결혼축하연에서 갑자기 어학으로 넘어간 리아의 이야기를 따라잡지 못했다.
"왜 내가 러시아어를?"
"타즈사가 국적을 박탈당할 경우를 생각해서. 만약 그때는 내가 너를 러시아 정부에 추천해 줄게."
"하하, 고마워."
그녀이 행로는 이런 말이 농담이 되지 않을 만큼 평범함과는 멀리 떨어진 인생이다. 절대 유일의 여자 운동선수이자, 대 러시아의 보물. 내가 누구보다 동경한... 구름 위의, 천계 위의 존재. 그런 사람이, 그 리아 가넷이...
'타즈사는 나만의 것이야'
"리아..."
나는 키스까지도 가능한 위치에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떨리는 손가락을 조심스레 가져갔다. 그녀를 안은 손에 힘이 실린다. 맹세해도 좋다. 절대로 질리지 않는다. 설령 지금 이 때가 영원히 이어진다고 해도...
작가가 던진 떡밥을 열심히 승화시켜서 원작에 충실한 (이래도 되는거냐) 망상을 해보았습니다.
대사는 99% 묘사는 80% 원작의 것입니다 [...그럼 잽싸게 도망을]
2008/08/16 23:59
2008/08/1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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