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같은 스토리

  농담도 아주 오래되어야 한다. 그 농담하는 방식 혹은 그 어법을 일러 소설이라 불렀다. 그런데 굳이 이를 가리켜 인류가 발명해 낸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 부르는까닭은 새삼 무엇인가. 아니, 대체 농담이란 무엇인가. 야유, 빈정댐, 비꼬기가 이에 해당되지 않겠는가. 이른바 아이러니라 부르는 어법이 그것. 어째서 이 어법을 여자들, 아이들, 그리고 혁명가들이 제일 싫어할까. 이 물음에 민첩하게 대답한 사람이 조세프 콘라드였다. 고결한 소질, 신념, 헌신, 행동 등의 덕목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어법이 농담이다.
  유독 농담이 사람들을 못살게 굴거나 성내게 한다든가 공격한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세계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인식케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가진 확신을 빼앗거나 흔들리게 하기 까닭이다.
- 김윤식, "소설을 왜 오래된 농담이라 하는가", 한국일보 2001. 2. 20 중에서

  '오래된 정원'이나 '아주 오래된 농담'에 부쳐진 글을 인용하는게 겸연쩍지만 7년 전의 기사이니 누가 알겠는가. 굵게 표시한 부분은 기사에도 짧은 부제로 요약되어 있었는데 꽤 마음에 들었다.

  글쓰기를 세계를 창조해내는 일이라 하면 어폐가 있겠지만, 적어도 글을 중심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붓 가는걸 다듬어 그걸 해석해내는 작업임은 분명하다. 세계는 아리송하다. 불가해한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완전해를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학에는 농담이 있어야 한다. 왜?
  당대의 전망은 당대의 닫힌 맥락 안에서 구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 안에서 고찰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전망을 획득한다. 문학 텍스트는 당대의 전망을 수립하기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리퍼런스이다. 철학과는 달리, 문학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존재 형태를 예시하는 초월성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철학이 있었던 것들과 있는 것들 안에서 상수를 추출하여 세계상을 확립한다면, 문학은 있었던 것들과 있는 것들과 있을 것들을 참조하여 세계상을 만들어낸다.
- 김정란, 「밥풀때기와 우주」,『연두색 글쓰기』, 새움, 2001 중에서
  세계를 구성해나가는 작업에 농담이 없으면 곤란하다. 그 세계는 누군가에 의해 완벽히 규정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불확실성과 상상력이 함께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현실의 견고한 텍스트를 부수는 일이 필요하고, 흔들림 없다고 생각했던 개념은 산산조각 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요컨대 농담이 있으면 족하다. 잘 된 농담과 잘 되지 않은 농담이 있겠지만, 그런 가치평가를 하기 이전에 농담들은 각기 하나의 이야기로서, 문학으로서 동등한 세계를 구성하고 있음은 인정받아야 한다.
  농담의 영역에 따로 장르가 어디 있겠나 싶지만, 과거 추리소설이나 판타지가 그랬듯 소위 순수문학의 변두리/바깥에 위치하는 장르들은 마치 문학의 일원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한국의 문학권력이 문단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든가 하는 동네 얘기는 제쳐놓고서라도, 문학을 즐기는 독자 다수가 이런 편견에 함몰되어 있다. 클래식과 락음악을 함께 들으면 이해하지 못하고, 애니메이션과 독립 영화를 함께 즐기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세태라지만 분명 농담이 농담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에는 이글루스에서 도서 밸리에 올라오는 '일빠들이 좋아하는 라이트노벨'은 책이 아니므로 제거해줄 것을 요구하는 포스트를 본 적이 있다. 문제는 이게 단순히 고상함에 치를 떠는 사람의 넋두리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야말로 농담을 던져봐야 하는 세상이 아닐까.

  그런데 다시 인용문으로 돌아가서, 아이러니의 어법을 '여자들과 아이들, 혁명가들'이 제일 싫어할지는 모르겠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현실도 야유, 빈정댐, 비꼬기라는 농담이 없어선 안 될 만큼 절실하다. 그래서 시대가 상업적 글쓰기에 잡아먹혔다는 글팔이 공장장의 징그러운 엄살과 자기변명이 들려도, 어딘가의 무명씨가 뱉어냈을 날선 풍자는 일말의 편견을 용서해주고 싶을 정도로 고소한 것이다. 다만 이런 해학이 아이들과 혁명가의 것으로 치부된다는 것만큼은 여전한 사실인 듯하다.
2008/07/22 17:14 2008/07/22 17:14

trackback url :: http://www.seojinhwe.com/trackback/91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미와다스 2008/07/22 20:50

    농담같은 세상에서 농담같지 않은 농담을 보는것도 힘들더군요
    [딴소리 아니 헛소리]

    • 서진휘 2008/07/22 20:52

      자 그러니 문학을 읽으시는겁니다.

writ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