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컨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인지라, 좋든 싫든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는 요즘입니다. 각고의 심혈을 기울였건 기계에 찍어내듯 양산했건 작가의 눈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토리로부터 특정한 진행 기법을 추출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독자 쪽의 욕구가 생기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플래그입니다.
  플래그에 대한 유익하지 않은 글을 써볼까합니다.

  플래그란 깃발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지만, 여기서 다루는 플래그는 소설이나 드라마, 또는 만화·애니메이션, 시뮬레이션 게임 등의 스토리에 있어서 이후의 특정한 전개·상황을 일으키는 사항을 가리키는 슬랭이다. 복선과 같은 의미이기는 하나, 플래그는 비교적 단순히 정형화된 '정해진 패턴'의 함의가 있다.
- 일본어 위키백과 '플래그(스토리)' 문서에서
  (아직 이 항목의 한국어 문서가 없길래 저의 조악한 번역을 붙여봤습니다)

  어떤 상황을 보고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구나 짐작이 가게 하는 장치가 플래그라는 얘깁니다. 복선보다 단순하고 정형화되었단 얘기는 이런겁니다. 보편타당한 간단한 예를 들죠.
  -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에서, 애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다음의 일을 기약하는 등장인물. 돌아오는 것은 주검, 흐느끼는 애인
  - 등장인물을 과소평가하는 반대 세력. 깔보는 대사를 한두개 툭 던진다. 그러나 등장인물에 의해 패배하거나 격파
  - 소망과 맹세를 말하고 중요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인물은 대개는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실종/기타 등등

  영화의 맥락에 대입한다면 플래그는 클리셰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스토리의 진행뿐 아니라 영상에서 연출의 영역에서도 플래그는 성립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클리셰 중에서도 너무 뻔한 정도의 강도에 해당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무차별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니 자제하도록 하고... 아마도 이후에 암시하는 진행에 따라 대표적으로 나뉘는 플래그의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망 플래그, 연애 플래그, 생존 플래그, 재회 플래그, 분기 플래그 등이 있다고 하는데 대체로 설명은 안 해도 될 것 같군요. 사망 플래그가 흔히 언급되는 종류라 부연 없이 '플래그가 섰다'고 말하면 사망 플래그가 섰다는 의미가 되는 경우도 많은 듯 합니다.
  다만 분기 플래그의 경우는 이름의 유래가 보이니 설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본래 플래그라는게 프로그램을 짤 때 특정 상황에서 선택지를 주고 원하는 쪽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하는 분기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게 사용자가 분기를 선택할 수 있는 게임 등에서 '플래그'라는 이름 자체로 불리면서 암시나 복선을 내포하는 의미로까지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죠.

  어휘의 탄생 지점으로 보건대 플래그 용법이 회자되기 시작한건 빨라야 90년대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인류가 이야기를 창조하기 시작한 이래 암시와 복선의 기법은 꾸준히 사랑받았고, 현대의 독자의 시점에서 볼 때 플래그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접근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전통주의적 접근
  플래그를 '상투적인 복선' 그대로의 의미로 사용하거나 파악하려는 방식. 이것은 단지 이야기를 양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뿐 아니라, 소위 장르적 문법을 적용하면서 독자로부터 이야기 진행에 대한 공감을 얻고 기호나 성향에 따른 잠재적 소비층을 결정하려는 행위로 연결시킬 수도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건의 진행에 대한 실마리를 얻음과 동시에 작품의 성격을 규정하는 단서로서도 활용될 수 있다. 연애물에 있어서는 여성향/남성향/노멀의 구분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있을지도 모른다)

  수정주의적 접근
  특정한 문장이나 전개가 상투적인 플래그로 견고해지는 것에 대항하여, 작가의 표현 방식의 자유를 존중하고 전개에서 자유도를 높이는 방식. 진행의 의외성을 강조하거나, 상투적 플래그를 낯선/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하거나, 복선의 사용을 현격하게 줄이는 식으로 대응한다.
  * 낯설게 하기
  상투적 플래그/플래그 코드를 그대로 차용하여 사용하는 대신,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문맥에서 쓰이도록 함으로써 의외성을 가미한다. 동인지 혹은 성인지에서 원작의 세계관을 빌려 쓰면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 플래그 함정
  플래그를 배치하되 이후의 전개를 쉽게 예측하지 못하게 사용하는 수법. 추리나 미스테리 장르에서 흔히 쓰인다.
  * 플래그 컴플렉스
  플래그를 사용하되 작품 내부에 액자형 구조를 끼워넣어 플래그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전통주의적 플래그 기법에 대한 지루함을 덜어주면서도 기법 본연의 효과를 살리려는 의도가 있다.
  * 절충형
  플래그의 진부함과 관계없이, 자유로이 사용하되 작품 내에서 (되도록) 2차적인 의미가 부여되도록 조정한다. 2차 창작의 영역에서 흔하게 쓰인다고 볼 수 있으며 메이저로는 '하야테처럼!'을 꼽을 수 있을지도.

  이외에도 다양한 접근 방식이 있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게 좋은 편인가요? 만일 쓰시는 분이 있다면 어떤 쪽인가요?
  아마도 플래그라는게 독자 입장에선 쉽게 이야기하기 좋은 개념이고, 그만큼 패러디의 영역에 쓰이기도 편한게 아닐까 정도는 결론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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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자!)
2008/07/21 00:56 2008/07/21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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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걀 2008/07/21 02:01

    게임에서 분기 선택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플래그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소비자(독자 시청자 등)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순간 스스로 네타당하는 것이니까요. 맞으면 맞아서 문제지만, 틀리면 틀린데로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ps : 개인적으로는 플래그 개념은 게임상에서 설정하는 분기정도로만 보고 있고, 그 이상의 패턴의 정형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ps2 : 헛소리 동참중

    • 서진휘 2008/07/21 12:04

      전 반대로 생각합니다. 짐작하는 쪽도 움직이는 독자죠.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는 쪽도 있겠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말이죠.
      맞으면 맞아서 좋고, 틀리면 틀린대로 좋습니다.
      그렇다고 네타를 우려하는 달걀님이 바람직하지 않다는건 아니지만요.

  2. 미와다스 2008/07/21 14:43

    플래그 라는게 나온다는건
    최근 작품들이 어떤의미론 진행이 뻔하다는 말이 되는거 같아요
    그래서 전 반전물이 좋습니다
    [?]

    • 서진휘 2008/07/21 14:49

      미와다스님은 수정주의파시군요 [틀려/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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